칫솔살균기 생산업체인 에센시아의 신충식 사장(43)은 요즘 해외에서 찾아오는 외국 바이어를 만나느라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그가 개발한 칫솔살균기를 탐내는 외국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해외에서 10여통의 e메일과 팩스가 들어온다. 수출협의를 요청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얼마 전에는 중국 하이얼전자와 미국의 콘에어 관계자들이 회사를 찾아왔다. 또 미국의 TV홈쇼핑업체인 QVC도 방송을 내보내겠다며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신사장은 요즘 중소기업인으로 떠오르는 ‘스타’가 됐지만 그의 성공담에는 쓰라린 인생역전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부도 이후 갓 태어난 아들을 강보에 싼 채 병원에 맡기고 3년간 승합차 생활을 하며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이다.
신사장의 부친은 체신부(현 정보통신부) 공무원이었다. 박봉에 3남1녀를 가르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학자금을 마련하는 데 힘에 부쳐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욕심을 부릴 수 없었어요.” 신사장은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정부가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는 구미 금오공고 전자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사장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기숙사에서 야반도주를 일삼아 정학도 여러번 받았다. 친구들과 서울에 올라와 아무런 생각 없이 배회하곤 했다. “학년마다 서너 번씩 학교를 뛰쳐나갔던 것 같아요. 붙잡혀 와서는 선생님께 종아리가 부르트도록 매를 맞았죠.”
출석일수가 부족해 졸업할 수 없었던 신사장은 교장선생님의 인정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신사장이 공부에 대해 눈을 뜬 것은 79년 해군에 입대하면서부터다. 기술하사관으로 복무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군제대 후 대학에도 들어가고 언론사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급성간염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5개월간 투병을 했다. 88년 여름 퇴원한 신사장은 매일유업에 들어갔다. 이 회사에서 2년 남짓 유아용품시장 진입을 위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한달에 서너 번 집에 들어갔을 정도로 열정을 쏟았어요, 남대문ㆍ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을 누비며 유통생리를 샅샅이 익혔죠.”
신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치아가 나빠 자주 치과에 갔던 신사장은 치과의사로부터 칫솔에도 세균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그렇다면 칫솔살균기를 만들기만 하면 ‘대박’이겠구나”며 무릎을 쳤다. 그때부터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밤을 새워가며 개발에 매달렸다. 90년 말 첫 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박에 부풀었던 신사장의 꿈은 날아가고 말았다. 시장에 내놓았지만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부피가 크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신사장은 절망하지 않았다. 또다시 퇴근 후 칫솔살균기와 씨름을 한 지 10개월 만에 성능이 향상된 새 상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승부를 낼 작정으로 회사를 차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91년 12월 신사장은 전셋집에서 월세로 옮겼고, 부모님의 시골집과 여동생과 남동생 집을 담보로 7,000만원을 마련했다. 서울 양재동의 5평짜리 사무실에서 생산과 판매를 했지만 소비자들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는 “당시 칫솔에 세균이 있다는 관념이 없어 소비자들이 칫솔살균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장사가 안되자 신사장은 칫솔살균기 홍보 묘안을 생각했다. 승합차로 건어물장사를 한 것도 칫솔살균기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승합차로 전국을 돌며 건어물과 칫솔살균기를 팔았다. 한번은 부산 지하도에서 장사하다 지역깡패들에게 “허락도 안 받고 장사했다”며 심하게 맞기도 했다.
1년 반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결국 93년 7월 1억원의 부도를 내고 말았다. “숟가락 하나 못 갖고 야반도주했어요. 3만원에 월세로 살다 몇개월 만에 채권자들에 발각돼 다시 도망쳐야 했습니다.”
신사장의 한강둔치 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때가 93년 2월로 밤이면 강바람이 매서웠다. 태어난 지 100일밖에 안된 아들이 자동차 매연으로 급성폐렴에 걸렸다. 돈이 없었던 신사장은 병원응급실에 아들을 데려다놓고 메모를 남긴 채 돌아섰다. ‘해외입양은 절대 안됩니다. 2년 뒤 꼭 찾으러 올 테니 부탁합니다.’ 신사장은 한참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둘째 성호를 데려왔을 때는 이미 다섯살이 돼 있더군요.”
낮에는 건어물장사를 하고 밤에는 승합차에서 아내와 큰아들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면서 개발에 매달렸다. “어금니를 꽉 물고 눈물을 삭히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행운의 여신은 갑자기 나타났다. 95년 여름 후배의 도움으로 승합차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고, 그해 12월에는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홍보 기회를 잡았다. “출연료 300만원은 승합차를 담보로 빌렸죠.”
칫솔살균기가 지상파 방송을 타는 것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신사장은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다. 주위사람들을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5분 동안 무려 1,000개 이상 팔았다. 구입자들이 선입금한 돈으로 4개월 동안 만들어 정성껏 포장해 보냈다. 신사장은 “당시 ‘감사합니다’는 말밖에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듬해 5월에는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소개돼 3,000개 이상 주문을 받았다. 아르바이트생까지 채용해 2개월 동안 밤을 새워가며 만들 정도였다. 이때부터 칫솔살균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96년 6월 법인으로 전환한 에센시아는 안산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공장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직원도 20여명으로 늘고 매출도 10억원대를 넘어섰다. 칫솔살균기가 인기상품으로 떠오르자 96년 말부터 TV홈쇼핑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다. 서울 신림동에 자체 공장을 마련한 2001년부터 TV홈쇼핑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최고의 인기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대형 쇼핑센터 입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11월부터는 약국에서도 판매가 되고 있다.
꾸준한 연구개발로 세계발명품대회에서 잇달아 수상을 하면서 해외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수출을 시작해 미국과 스위스, 홍콩, 일본 등 10여개국에 소량이지만 내보내고 있다. 그는 “특히 암웨이의 생활용품 국내시장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센시아는 올해 수출 50만달러를 포함해 12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사장은 “에센시아를 칫솔살균기 브랜드 넘버원으로 만들겠다”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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